“불안할 때 괜히 뭐라도 먹고 싶다.”, “기분이 울적해서 치킨 시켰어.” 이런 말, 한 번쯤 해보거나 들어보셨을 겁니다.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할 때 유독 음식이 당기는 이유는 단순한 식욕 때문만이 아닙니다. 이는 감정을 조절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반응일 수 있으며, 심리학에서는 ‘감정섭식’이라 불립니다. 이번 글에서는 불안할 때 과식하게 되는 심리적 이유와, 그 안에 숨어 있는 충동 조절 문제, 자기위로 방식의 메커니즘을 살펴봅니다.
감정섭식: 감정으로 배고픔을 착각하다
감정섭식(Emotional Eating)이란 실제로 배가 고프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음식을 섭취하는 행동을 말합니다. 이 현상은 특히 스트레스, 불안, 우울, 외로움 등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서 자주 발생합니다. 음식이 감정적 고통을 일시적으로 덮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.
우리 뇌는 단 음식이나 고지방 음식을 섭취했을 때 도파민,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게 됩니다. 이 물질들은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어, 불안한 상태에서 음식을 통해 ‘심리적 보상’을 받는 것입니다. 특히 아이스크림, 과자, 빵 같은 간식류가 자주 선택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.
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감정섭식이 반복될 경우, 뇌가 ‘감정 = 음식’이라는 공식을 학습하게 된다는 점입니다. 그러면 조금만 감정이 흔들려도 음식으로 해결하려는 패턴이 고착화되고, 이는 장기적으로 건강 문제나 죄책감, 자존감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.
따라서 감정섭식은 단순한 식습관 문제가 아닌, 감정을 다루는 방식의 일환으로 접근해야 합니다.
충동조절: 참지 못해 먹는 게 아니라, 조절할 줄 몰라서
불안할 때 과식하는 행동은 종종 ‘의지가 약해서’라고 여겨지지만, 실제로는 충동조절 능력과 관련된 뇌의 작용에서 비롯됩니다. 특히 불안 상태에서는 뇌의 전두엽 기능이 약화되고, 충동과 욕구를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. 그 결과 우리는 눈앞의 자극에 쉽게 반응하게 되고, 음식은 그중 가장 즉각적인 보상 수단이 됩니다.
이러한 현상은 특히 스트레스를 받을 때 명확하게 나타납니다. 업무 스트레스, 인간관계의 갈등,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은 뇌에 부담을 주고, 우리는 ‘빠른 해소’를 위해 과식을 선택하게 됩니다. 이는 일시적인 만족을 주지만, 이후에는 후회, 자기비난 등 또 다른 스트레스를 낳기도 합니다.
충동조절은 단순히 ‘참는 것’이 아니라, 욕구를 인식하고 다르게 반응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. 예를 들어, "지금 이 배고픔은 진짜 배고픔일까, 감정 때문일까?"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충동과 감정을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.
불안이라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, 감정과 행동 사이에 ‘멈춤’의 시간을 두는 훈련이 중요합니다.
자가위로: 음식이 아닌 감정에 반응해야 한다
우리가 불안할 때 음식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, 그것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‘자가위로’ 수단이기 때문입니다. 음식은 준비할 필요도, 설명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위안을 줍니다. 하지만 그 위로는 일시적이며, 본질적인 감정의 원인을 해결해주지 않습니다.
진짜 필요한 것은 ‘감정을 다루는 기술’입니다. 불안할 때는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,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. 예를 들어, 감정일기를 쓰거나,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, 혹은 잠시 산책을 하며 감정을 비워내는 등의 방식은 음식보다 훨씬 더 건강한 자가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.
또한,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,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 루틴을 만드는 것도 효과적입니다. 음악 듣기, 목욕, 명상, 그림 그리기, 심호흡 등 자신에게 맞는 위안의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.
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‘내가 지금 위로가 필요한 상태’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. 감정이 허기진 상태에서의 과식은,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나 불안을 음식으로 메우려는 무의식적인 반응일 수 있습니다. 감정을 다루지 않으면, 어떤 음식도 마음을 채워줄 수 없습니다.
결론: 배가 고픈 게 아니라, 마음이 허전한 것
불안할 때 과식하는 습관은 단순히 식욕의 문제가 아닙니다. 그것은 마음의 허기에서 비롯된 감정적 반응이며, 감정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.
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 연습이 필요합니다.
“지금 진짜 배가 고픈 걸까?”, “나는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?”
음식이 아니라 감정에 먼저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, 우리는 더 이상 불안을 먹는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됩니다. 감정을 알아차리고, 건강한 방식으로 위로할 수 있을 때, 우리는 마음도, 몸도 한층 더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.